Anne of Concrete Gables :: 주말이 되니 뭔가 섭섭하네

Anne of Concrete Gables




지도안 생각만 하면 노트북을 부숴버리고 싶은데
애들 생각하면 그래도 즐겁다.

요즘 아침에 본의아니게 출근을 일찍 하고 있다. 일곱시 사십분까지 출근인데 학교에 도착하면 일곱시 오분이다. 출근부에 서명하고 교실에 올라가보면, 전교에서 제일 말썽쟁이반답게 등교한 애들이 없다.

오늘은 일곱시 십분쯤에 교실에 갔더니, 이자식들이 한명도 등교를 안 한게 아닌가. 그래서 교실 문도 잠겨있어서 어쩔 수 없이 벌 서듯이 문 밖에 서 있었다. 10분을 기다려도 애들이 올 생각을 안 한다. 다른반애들은 와서 벌써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반 바로 앞이 교장실이라 그 근처를 교장선생님이 자주 왔다갔다 하시는데, 내가 문 밖에 서 있으니 딱 걸려서 처음엔 "어이구, 일찍 출근하셨네요." 하셨다. 그런데 두번 세번 왔다갔다 하시는 와중에도 내가 교실엘 못 들어가고 서 있으니 "어떻게 이 반은 교생선생님만 먼저 와 계시고 애들은 올 생각을 안 하네."라고 하셨다. 내가 교장선생님 앞에서 민망해하는 걸 마침 바로 옆반인 3반으로 등교하던 아이가 보았다. 그 아이가 교실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어 도로 나오더니 교장실 옆 교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나온 아이가 나한테 2학년 4반 열쇠를 내밀며 "선생님, 이거요."

난 너무 놀라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고, 당황해서 "어? 진짜 고마워. 이거 문 열고 나서 열쇠는 어디다 갖다 둬야 하는 거야?" 했더니 "제가 도로 갖다 놓을게요."

영어 수업은 수준별 수업을 하기 때문에 2학년 3반, 4반을 묶어 다시 상,하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한다. 나는 담임반이라는 이유로 하반인 4반 영어 수업을 맡아 들어가는데, 그 아이가 지난 화요일에 우리반에서 수업을 듣던 아이었다. 그래도 나를 수업시간에 한번 봤다고 그러는지, 담임교생도 아닌데 복도에 서 있다고 열쇠까지 챙겨다 주는 게 어찌나 고맙던지.

열쇠로 문을 따고 돌려주면서 너무 고마워서, "수업시간에 또 보자."하며 웃었더니 갑자기 하는 말이 "선생님, 지난 시간에 저 시키셨죠?"
깜짝 놀라 기억을 더듬으며 그렇다고 대답하니
"아씨~ 성우가 가로채서....."
하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돌아선다.

영어는 2학년 4반이 '남자' '문과' '열반'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서 선생님들도 지도하시기 가장 어려워하는 반인데 하필 내가 그 반 수업을 줄창 맡아서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주 화요일이 첫시간이라 진땀을 흘리며 수업하는데, 역시나 산만하고 정신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애들이 제법 열심히 대답하고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오늘 나에게 열쇠를 갖다준 병훈이도, 내가 한번 무언가 물어봤었는데 대답하려는 찰나 다른 아이에게 가로채인게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4반 수업 시간에는 아무래도 담임반이다보니 4반 아이들이 눈에 익어 우리반 애들 이름만 많이 불러줬었는데, 다음시간에는 3반 아이들 이름도 불러가며 얼굴을 익혀야겠다.



3,4교시에 있었던 영자신문반 계발활동시간에는 담당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시는 바람에 잡담시간이 되어버려, 우리반 훈이랑 3반 충호까지 덤으로 끼워서 두시간이나 떠들었다. 정작 내 담당학생들이랑은 20분씩 밖에 얘기 못했는데. 암튼 훈이 덕분에 우리반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누가 누구랑 어울려서 노는지, 이것 저것 많이 알게 됐다.

한참 떠들고 있는데 뒷문쪽을 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반 남자애들 네명이 쪽창에 머리통을 쪼로로 붙이고 눈을 끔뻑끔뻑 하고 있길래 문을 열어줬더니 "선생님, 케이크 나눠주세요!!!!"
영자신문반에서 먹다남은 케이크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왔나보다. 좀 나눠줬더니 엄청 좋아하면서 가더라.






나 아무래도 마지막날 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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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18:24 2009/05/1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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