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딘버러 Calton Hill 에서, 지도책을 모자에 꽂고
06.12.31
여기 민박집은 화장실도 깨끗하고 다 좋았는데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방이 냉골이었다. 초등학생 책상만한 넙적하고 뜨끈한 판때기 하나 달랑 세워져 있었는데 걔 혼자 뜨끈뜨끈할 뿐 정작 방은 하나도 데워지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파카를 입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잤다. 새벽에 세 번인가 깼는데 하나도 덥지 않았다. 파카 안 입고 잤더라면 에딘버러에서 동사할 뻔 했다.
아침에는 정말 맛있는 빵과 씨리얼이 나왔다. 방은 추웠어도 여기 음식은 정말 최고었다. 어제 추천받은 칼톤 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옆방 언니오빠들도 오늘 런던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같이 민박집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다가 언니가 칼톤 힐이 가깝다고 알려주는 곳에서 내렸다.
칼톤 힐을 찾아 올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정상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갑자기 계단이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눈 앞을 가로막은 벽을 타 넘기로 했다. 동생은 잘 넘어갔는데 나는 다리가 짧아서 버둥대고 있었다. 한참 버둥대자 그 위를 지나가던 장발의 금발머리 아저씨가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 주었다. 아저씨 땡큐.

칼톤 힐에서 내려다본 에딘버러 전경은 환상적이었다. 날씨가 그리 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 정말 영국에 오길 잘한 것 같아. 기회가 되면 꼭 봄에도 와야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봄에 오면 그 민박집도 좀 덜 춥겠지.

에딘버러 시내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제주도 생각이 났다. 아, 그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제주도에도 유명한 그 커다란 구릉이 있잖아. 수학여행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뭐였지.

대포 같이 생긴 게 있었다. 추워 죽겠는데 외투도 걸치지 않고 마치 봄처럼 옷을 입은 여자가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두꺼운 옷을 껴 입고 있어서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 항상 아쉬웠기 때문에 순간 나도 저렇게 얇게 입고 다녀볼까 생각했지만 역시 사진보단 건강이 중요하다.
동생도 신이 났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면 내 사진보다 동생 사진이 더 잘 나오는데 대체 왜일까. 동생이 키가 커서 사진이 잘 받나. 동생이 나보다 잘생긴 건 아니니까 역시 키 때문인가 보다.

킬트 입은 아저씨, 드디어 찾았다!!

밑에서 올려다 본 Calton Hill
에딘버러 시내 구경을 한참 더 하다가 느지막히 런던으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그래도 더 구경하려고 했는데 비가 점점 거세져서 바지가 다 젖고 바람에 우산 중봉이 휘고 에딘버러 지도책마저 휙 날아가버렸다. 도로에 떨어져 처참하게 뒹구는 지도책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시내 구경을 할 맛이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젯밤에 너무 춥게 잤는데 비까지 맞으니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무서웠다. 바로 웨이벌리역으로 돌아가 1시에 런던행 기차를 탔다. 웨이벌리역으로 가는 길에 그 남매와 친구 일행을 스쳐 지나갔다. 비가 쏟아지는데다 바쁘게 어딘가 향하는 것 같아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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