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Gatwick 공항에서, 체코로 향하는 비행기
07.1.1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은 언니네 집에서 보냈다. 여섯시 반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전, 여섯시 십분에 깼다. 부엌으로 가서 씨리얼을 먹고 씻었다. 씻고 나왔더니 선정이언니도 일어나 있었다. 밤을 새다가 잠깐 잠이 든 것 같았다.
어젯밤 언니는 공항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데 못 데려다 줘서 미안하다고 오히려 걱정이었다. 떠나기 전날 밤에 짐을 싸고 있으니 추울 때 몸에 붙일 수 있는 핫팩도 수십개 챙겨주었고 코다이상이 즐겨 먹는다는 한국 비빔면과 라면도 몇개 넣어주었다.
언니 덕에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영국을 뒤로 하고 체코로 향했다. 개트윅 공항에서 저가항공기 이지젯을 타고 이동했는데 유럽 안에서 저가항공이 보편화되어서인지 저렴하고 안전했다. 다만 개트윅 공항은 너무 심하게 붐벼서 다시는 그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았다.
체코 땅에 떨어지고 나니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웠다. 영국에서는 말도 통하고, 언니도 있어서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데 체코로 넘어오니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방법을 몰라서 한참 허둥댔다. 프라하 시내로 나오고 나서는 숙소를 못 찾아 난리가 났다. 해가 지기 시작한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도상에는 분명 이 자리에 숙소가 있다고 되어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길가는 여자 둘에게 영어로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어봤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친절하게도 자신들도 모르는 길을 주변 가게에 물어물어 숙소를 찾아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일단 숙소는 찾았는데 숙박비가 너무 비쌌다. 더블룸 이틀밤이 260유로였다. 다른 데 갈까 하다가 체코 밤거리를 캐리어 끌고 헤맬 자신이 없어서 그냥 여기서 묵기로 했다. 이걸 별로 비싸지 않은 호텔이라고 소개해놓은 론리플래닛을 욕하면서. 카드를 내밀었더니 카드가 고장났는지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여행 일주일 짼데 지금 카드가 고장났다고? 에딘버러에서 쇼핑할 때는 잘만 읽혔는데!! 하는 수 없이 캐리어를 풀어 저 깊숙한 곳에 있는 돈봉투를 꺼내 숙박비를 치렀다.
사실 내가 여행 준비를 철저히 안 한게 잘못이었다. 숙소 예약조차 하나도 안 하고 서울을 뜨다니, 참 용감하고 겁없는 짓이었다. 영국에선 선정이언니가 도와줘서 몰랐는데 체코로 오니 내가 얼마나 대충 여행을 왔는지 참 한심하기만 했다.
아무튼 숙소를 찾았으니 다행이었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나자 머리가 너무 아팠다.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잠깐 바깥으로 나왔다. 런던에서는 언니가 빌려준 런던 디키책을 들고 다녀서 지도도 참 자세하고 명소, 음식집 안내도 꼼꼼해서 편했는데 체코는 얇디 얇은 프라하 론리플래닛 한권 딸랑 들고 왔더니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여행 책자에 의지해서 숙소 근처의 음식집을 찾아갔는데, 이건 정말 괜찮았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피자 & 리조또
피자도 맛있었지만 리조또가 정말 맛있었다. 유럽에서 먹은 리조또 중 최고였다. 버섯을 넣은 크림소스 리조또인데 접시 가장자리에 뿌려진 건 향신료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나와 아까 숙소 찾아가는 길에 유심히 봐두었던 씨티은행으로 갔다. 고장난 신용카드가 씨티카드다. 그런데 카드를 긁어야 문을 열어주는 은행이었다. 카드가 먹통이니 은행엔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들어가 본대야 설날이라 직원도 없을테니 포기하고 150코루나짜리 공중전화카드를 한장 사서 공중전화기로 갔다. 한국에서 사 간 블루버드카드가 왜인지 영국에서도 체코에서도 먹통이어서 좀 열이 받았다. 그 때 갑자기 탕탕 소리가 들렸다.
체코 도착한 후로 고난의 연속이어서 잔뜩 겁 집어먹고 있었다. 호텔도 잡고, 저녁도 먹어서 잠시 긴장이 풀린 상태인데 총소리가 들리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니, 난데없이 프라하 시내에서 웬 총격전이지, 여기 시내에서 총 쏘고 이런 동네인가, 난 이제 그럼 여기서 객사하는건가.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탕탕 소리가 몇번 더 들리고 나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서 있었다. 동생이 아무래도 불꽃놀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 오늘은 설날이었다.
숙소에 돌아오자 하루종일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또 아팠다. 유레일 패스가 든 전대가 사라져서 한바탕 소동까지 피우고 났더니 머리가 두쪽으로 조각나는 것 같았다. 전대는 동생 배낭에서 나왔다.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파악했는지 동생도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얌전히 굴었다.
그래도 호텔인지라 오랜만에 욕조에서 물까지 받아 씻고 나오니 몸도 풀리고 마음도 좀 편해졌다. 그나마 여긴 방이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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