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of Concrete Gables ::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와 시내구경

Anne of Concrete Ga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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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Side Gallery 가는 길,
그래피티가 인상적이어서 찍었던 지하철역 근처 사진.
07.01.04


체코에서 야경 같은 건 다 집어치우고 숙소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잘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베를린 오는 기차에서 좀 잤는데도 밤 열시에 잠들어서 여덟시에 일어났다. 갈수록 수면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유럽의 대세가 "난방은 대충"인 것 같다. 여기도 역시 난방은 좋지 않았다. 런던에서 지냈던 민박집은 집이 깨끗했던 것도 아니고, 언제 빨았는지 의심스러운 축축한 베개와 시트에, 아침에 화장실도 초만원이고, 밥을 맛있는 걸 해줬던 것도 아니었지만 난방 하나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자면서 춥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최고로 추웠던 에딘버러 민박집, 꽤나 추웠던 선정이언니네 집을 거쳐 그래도 좀 따뜻했던 체코 호텔을 지나 베를린 민박집에 오자 다시 새벽 추위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베를린은 다른 유럽 도시보다 높은 위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낮에도 상당히 추웠다. 추울거라고 생각하고 내복에 가디건까지 껴입고 잤더니 그래도 제법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시차적응을 못해서 새벽에 깨던 습관 때문인지 여행 초반에는 항상 아침 6-7시 정도에 일어나곤 했다. 붐비기 전에 화장실을 이용하고 아침밥을 챙겨먹으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러던 것이 베를린에서부터 기상시간이 7시를 넘어가기 시작해서 피렌체쯤 가자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겨웠다.
이날도 늦게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나왔다. 중앙역에 가서 뮌헨가는 밤기차표를 예약하고 났더니 벌써 열한시였다. 1월 6일 밤 10시에 뮌헨으로 출발하는 쿠셋(기차 침대칸) 두개를 예약하는데 예약비만 60유로였다. 유레일패스가 있으니 따로 표를 살 필요는 없고 예약만 하는 건데 침대칸이라 그런지 오지게 비쌌다.

중앙역에서 Warschauer str.역까지 S-Bahn을 타고 가서 다서 U-Bahn으로 갈아 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가깝다는 역에서 내렸다. 베를린에 도착한 이래 줄곧 S-Bahn만 타보아서 U-Bahn은 어떨지 한껏 기대했다가 대실망하고 말았다. 독일에서는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을 S-Bahn, 지하로 다니는 전철을 U-Bahn으로 구분해서 말하는데 난 당연히 지하 쪽이 훨씬 깨끗하고 현대적일 줄 알았다. 서울만 해도 지상으로 다니는 1호선보다 비교적 최근에 개통한 5, 6, 7, 8호선이 훨씬 깨끗하지 않은가.
U-Bahn은....... 참으로 더러웠다. 그것도 로마나 파리 지하철에 비하면 훨씬 양반이긴 하지만 그 때는 아직 로마, 파리 지하철을 몰랐던 터라 충격이 매우 컸다. 런던, 프라하, 그리고 베를린 S-Bahn의 깨끗한 지하철만 보다가 U-bahn에서부터 슬슬 유럽의 지하철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U-Bahn Schlesisches Tor 역에서 내렸던 것 같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역에서 멀어서 좀 걸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나쁜 놈이 표지판 화살표를 스티커로 가려놓은 덕분에 한참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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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Side Gallery의 시작

과거 베를린 장벽의 일부분을 남겨 놓은 것이다. 이쪽 벽면이 동쪽인 모양이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 길이는 2km 이상이었던 것 같다. 한국어로 된 낙서도 정말 많았다. '평양에 가고 싶어요'라는 통일을 염원하는 애국적인 낙서부터 연인에게 보내는 메시지, 가정의 화목과 일신의 안녕을 기원하는 낙서, 전도가 목적인 것 같은 종교적인 낙서까지 별별 낙서가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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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하지마셈

이런거 써놓거나 말거나, 벽은 온통 낙서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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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사이의 갈라진 틈

동쪽에서 바라보는 서방세계의 모습이다. 이 장벽 하나를 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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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래피티 두가지

라틴어 사전을 찾아보니 curriculum은 running, race라는 뜻이 있던데 그럼 이건 '삶을 위한 달리기'라는 의미일까. 1961년 장벽이 세워지고 1989년에 장벽이 무너졌다. 1968이 크게 그려져 있는 걸 보면 68혁명의 영향이 베를린에까지 미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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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뒤편

긴 장벽에 끝에 도달하니 장벽 뒤편으로 돌아가 볼 수 있었다. 들어가지 말라는 철문이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장벽의 뒤편은 어떤지 살펴보러 갔다. 수풀이 무성하기만 했다.



장벽의 끝에는 동역이 있었다. 여기 들어가서 동생은 소시지, 나는 Käse-Kirch-Kuchen(치즈체리케익)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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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케익, 버거...

맛있어 보이는 케익들. 에렇게 네모낳게 잘라서 판다.
먹음직스러운 차원을 넘어서 부담스럽기까지 한 버거와 소시지들.
독일 소시지들은 다 저렇게 길고 토실토실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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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은 바닐라향 음료와 치즈체리케익

 우유처럼 생겼는데 우유가 아니다. 바닐라향이 강한 물이다. 맛이 이상하다거나 비위가 상하는 건 아닌데 인공적인 맛과 향이 강해서 많이 마실 수가 없었다. 저 치즈체리케익은 체리향이 너무 강했다. 아주 맛있진 않았던 듯. 이것도 독일어 선생님이 호들갑을 떨면서 맛있었다고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나서 샀는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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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ahn 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아저씨

유럽에는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에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아마도 파리였던 것 같다- 클라리넷 연주가 너무 듣기 좋아서 선뜻 1유로를 내어 준 적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Checkpoint Charlie Museum으로 향했다. 찰리검문소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주로 사진과 설명이 있었을 뿐 전시된 유물은 많지 않았다. 동독 주민의 탈출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시켜 놓았을 걸로 잔뜩 기대하고 간 나에게는 실망이었다. 탈출에 사용되었다는 자동차 몇대가 그나마 볼 만했다.

찰리 박물관에서 버스를 타고 중앙역 쪽으로 이동하다가 씨티은행이 보이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렸다. 망가진 신용카드를 고쳐야 했다. 프라하에서부터 계속 눈에 불을 켜고 씨티은행을 찾았는데 이게 생각만큼 많지가 않았다. 국제적인 은행이라길래 우리나라 국민은행, 우리은행처럼 시내에 깔린 줄 알았더니 한 두개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은행 직원말로는 자기들이 카드는 고칠 수가 없단다. 근처 공중전화에서 한국 씨티은행으로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여행 열흘만에 그 블루버드국제전화카드를 쓸 수 있었다. 이놈의 국제전화카드가 대만 지진으로 해저 케이블이 끊겼다더니 하루에도 되다 안되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전화를 받은 친절한 남자 직원이 카드 고칠 방법은 없고 원하신다면 한국에서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서 한국에서 이쪽으로 부쳐주는 방법은 있다고 했다. -_- 그냥 신용카드 포기할래. 다행히 가져간 현금카드는 고장나지 않았으니 앞으론 뭐든 현금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현금카드 두장과 신용카드 한장을 가져갔는데 셋을 분산 보관한 게 천만 다행이었다. 신용카드가 왜 고장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여행이 다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디카 보호케이스에 붙어있던 자석 때문이었다. 디카 보호 케이스에 자석 여닫이를 붙여놓은 캐논의 무신경함이란. (결국 그 케이스 갖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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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여전한 베를린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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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er-Wilhelm-Kirche

2차대전의 흔적이 잘 남아있는 거래나 뭐래나.. 아 기억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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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담 거리의 easyInternet Cafe

정말 비싼 돈 내고 복장 터지게 느린 인터넷을 이용해야한다. 게다가 제어판을 손 댈 수 없게 해 놓아서 한국어 입력이 되지 않는다. 대영박물관 앞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한국어 잘만 이용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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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담 거리의 루이비통

원래는 Kurfürstendamm인데 줄여서 쿠담 거리라고 많이 부른다고 했다.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둔 널찍하고 큰 거리로 명품 매장들이 몰려 있다. 그림의 떡이지만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그렇지만 루이비통 매장은 뭐니뭐니해도 샹젤리제에 있는 게 최고.

숙소에 돌아와서 근처 대형수퍼에 과자나 사러 잠깐 나갔었다. 유럽은 옷 같은 건 상대적으로 매우 싼 반면 음식이 너무 비싸서 매 끼니 뭘 먹을지가 고민이었는데 이런 대형수퍼에서 파는 식재료는 정말 쌌다. 과일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물도 작은수퍼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싸서 짐가방에 자리만 있다면 몇통 사서 넣고 다니고 싶었다. 결국 가장 싼 바나나와 요거트를 간식으로 사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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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00:28 2007/08/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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