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gfraujoch 가는 길
07.01.10
아침부터 동생이랑 싸웠다. 뒤통수를 한대 쥐어박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제 숙소를 잡으면서 2박3일 숙박 + 융프라우요흐 관람 패키지를 추천하길래 그걸 골랐다. 사실 한국에서 융프라우요흐 할인권 같은 걸 다 들고 오긴 했는데 이리저리 계산 때려보니 숙소 따로, 관람권 따로 구입하는 것보다 이 호스텔에서 추천하는 패키지가 훨씬 저렴했다.
리셉션에서 가르쳐준 대로 유스호스텔 앞에서 8시 10분에 버스를 타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서 8시 20분에 그린델발트행 열차를 타서 다시 클라이네샤이덱행 열차로 갈아탔다. 클라이네샤이덱에서 융프라우요흐행 열차로 또 갈아타야 했는데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는 열차였다. 중간에 두번 View point라고 열차에서 내리면 동굴 안에 유리창이 있는 곳이 있어서 그걸 통해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 동굴은 약 100년 전에 뚫은 거라는데 이걸 뚫을 생각을 한 사람도, 뚫은 사람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눈 쌓인 산 위를 달리는 열차를 타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참 순진하다 못해 유아적인 생각이었다. 철로에 눈이 쌓이면 운행을 못하는 게 당연하니 기찻길을 터널로 뚫을 수 밖에.

왼쪽에 Jungfraujoch역 모퉁이가 조금 보인다
기나긴 터널의 끝에 융프라우요흐역이 있었다. 역사는 산 위에 지어진 큰 건물이었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막혀 있었고 그안에 우체국, 기념품샵, 레스토랑 등이 있었다. 정작 나가서 찬바람을 맞아 볼 수 있는 곳은 스핑크스 전망대와 Plateau 두 군데 뿐인 것 같았다.
작년 봄에 아빠가 융프라우에서 엽서를 보냈을 대 만년 설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쓴 건 줄 알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역사 안 우체국 앞에서 써서 보낸 거였다. 사람들이 거기서 다들 엽서 한 장씩 쓰고 있었다.
(이 곳의 본래 지명은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인데 한국에는 대개 융프라우라고 알려져 있다. 이 관광지가 한국 사람들에게만 유명한 모양인지 관광객 중 반 이상이 한국사람이었다. 융프라우요흐를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인터라켄 시내도 온통 한국사람 뿐이다.)
그래도 융프라우요흐는 비싼 돈 주고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일단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울 뿐더러 이 위에서 노는 것도 제법 재미있었다.
Plateau라고 그닥 넓진 않지만 눈 쌓인 고원 위로 나가 놀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눈 밭에서 뛰놀며 온갖 유치한 낙서를 남겼다. 동생과 내가 흰 눈 위에 한글로 낙서를 시작했더니 주변의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우리 따라서 눈밭에 낙서를 시작했다.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검정개 두마리를 끌고 온 독일어를 쓰는 부부가 있었다. 그 개들이 어찌나 이쁘고 잘생겼던지 같이 좀 놀아보려고 했건만 녀석들이 너무 거칠어서 다정한 사진을 찍는데는 실패했다. 개들이 눈밭에 오줌을 갈기자 눈이 누렇게 젖어 녹아버렸다. 아줌마 아저씨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걔네들은 들은 척도 안 하는 것 같았다.

멍멍이를 붙잡는 데 성공한 동생

Jungfraujoch에서 먹는 사발면
별 거 없었던 얼음 동굴을 구경하고 나와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내가 상상했듯이 하얀 눈밭 위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는 게 아니라 실내에서 먹는 거라서 안 먹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융프라우라고 집에 전화했더니 엄마가 컵라면을 꼭 사먹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_- 엄마아빠는 여기서 드신 컵라면이 맛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둘이서 14프랑이나 주고 사먹었는데 그냥 그랬다. 사발면이 사발면 맛이지 뭐.
여기가 높아서 숨쉬기 불편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처음엔 잘 몰랐는데 두어시간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기차시간 5분전까지 편지를 쓰던 터라 우체통에 편지봉투 집어넣고 급하게 기차 타러 뛰어갔다. 이번엔 그린델발트가 아니라 라우터브룬넨을 거쳐서 내려왔다. 안개가 끼어서 경치구경을 제대로 못해서 아쉬웠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해서 보니 아직 해도 넉넉하고 시간도 남아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원래 이 역 주변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유람선 타는 곳이 없었다. 호숫가에 배 한척이 떠 있길래 저건가 싶어서 가봤더니 배를 개조한 레스토랑이었다.
결국 역 안 information에 가서 물어봤더니 겨울에는 유람선 운행을 하지 않는댄다. 서역 쪽의 Thun 호수는 어떻냐고 물었더니 일요일에만 딱 한번 운행한대서 유람선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겨울에 추워죽겠는데 무슨 유람선이야.
버스를 타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서 수퍼마켓 MIGROS에 들렀다. 스위스 요구르트는 맛있다더니 별로 맛있는지 모르겠더라. 게다가 0.5프랑으로 특별할인한대서 집은 초콜릿이 계산대로 가자 2.1프랑으로 둔갑해서 심기가 좀 불편했다. 이거 뭐 독일어로 따질 수도 없고 내가 아까 잘못 읽은 모양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에서 하나 신기했던 건 독일어를 쓰는 지역에서도 고맙다는 인사는 Danke가 아닌 Merci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독일어로 Danke라고 했는데 상대방이 Merci라고 해서 민망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니 왜 이것만 불어를 쓰는 거야?

잠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시내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동생은 평범한 토마토소스의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맛있었다. 난 25프랑짜리 리조또였는데 반은 생쌀에 카레 맛이 나서 실망했다. 매일 꼭 하나씩은 돈이 아까운 짓을 한다.
밥 먹고 호스텔로 돌아왔더니 그 미국애들이 나가버려서 둘이서 6인실을 아주 편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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